K-1 맥스 파이터 임치빈(26세, 코마패밀리)는 누가 뭐래도 국내 최강의 파이터다.

대한격투기협회, 국제격투기무도연맹, 한국격투기연맹, 대한프로태권도연맹, 대한프로권법협회 무려 5개 단체의 라이트 급 챔피언 벨트를 보유했던 임치빈... 국내에 적수가 없는 그는 태국 본토 무에타이 무대와 일본 킥복싱 무대에 도전했다.

사실 일본 격투계가 한국 파이터를 주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임치빈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임치빈이 일본 킥복싱의 살아있는 전설 고바야시 사토시를 맹렬한 펀치 러쉬로 2라운드만에 완벽하게 제압했을 때 일본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TV 중계를 진행하던 캐스터가 방송도 잊은채 "고바야시 위험해! 어떻게 된거야!"라고 방송에다 소리를 질러댔던 일화는 아직도 일본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이다.

한국 최강의 파이터 임치빈이 입식타격 최고의 무대 K-1 맥스에서 일본의 수퍼스타 마사토와 대전해 판정패 한 것은 이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합이 있었던 지난 5월 4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나서는 안타까움이 더했다. 임치빈의 트레이너인 공선택 관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기 까지 했다.

결과부터 이야기 하면 임치빈은 '마사토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K-1에게 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K-1의 웅장한 스케일에 이미 패배한 채로 링 위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K-1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부터 K-1의 사전공격(?)이 시작되었다고한다. 일본 도쿄 시내 한가운데의 으리으리한 호텔에 선수는 물론 2명의 세컨드까지 1인당 1실씩 고급 호텔방을 제공 받은데서부터 주눅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찾아간 K-1 전용 트레이닝 센터는 공선택 관장 증언으로는 ‘생전 처음보는 곳’이였다고. 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록본기 한가운데에 K-1 빌딩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안에 최첨단 시설의 체육관에 발을 들여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좋은 시설을 자랑했다고 한다.

임치빈 선수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경기가 열렸던 아리아케 콜로세움. 경기가 열리기 대회를 준비할 때 찾은 경기장은 말 그대로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이었다고 한다. 아리아케는 관중석을 밀어내면 축구경기도 치를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엄청난 규모와 깍아지는 듯한 관중석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지은 지 40년이 넘은 장충체육관의 슈퍼스타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가 한창 준비 중이던 음향 장비와 무대, 조명 등의 행사 장비들은 임치빈에게 펀치 공격을 퍼부은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 지면서 ‘주눅’이 압박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공선택 관장도 애써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긴장감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K-1 주최측에서 경기 직전 주먹의 테이핑 이나 바세린 등 시시콜콜한 까지 지적하는 철저한 관리도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켰다고. 이날 제 1경기에 나섰던 야스히로 카즈야(정도회관 소속)가 주먹에 산만하게 소위 뽕을 만드는 것을 보고 저 정도는 괜찮은가 보다 하고 테이핑을 했지만 K-1 관계자는 한국의 무명 파이터에게 베풀 호의는 없었다고 한다.

심리적 압박감이 극대화 된 상태에서 임치빈은 대기실 복도에서 긴장을 풀기위해 파이팅을 외쳤고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복도를 가득메우고 있던 일본 관계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단다. 정작 임치빈은 자기가 무슨일을 했는지 기억도 잘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는 아리아케 콜로세움을 가득 매운 마사토 팬들이 질러내던 환호와 함성은 임치빈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공선택 관장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했지만, 이미 임치빈은 심리적 압박감이 극도의 긴장으로 바뀐 것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보였다고 한다. 이미 링위에 올라갈때 임치빈의 눈빛은 상대가 마사토 아닌 누구였어도 쉽게 이를 극복하고 이기기 어려워 보였다고 한다.

공이 울리자 임치빈은 평소와 다르게 마사토를 중심으로 외곽으로 돌기 시작했을 때 공선택 관장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닌 임치빈은 상대를 끊임없이 추격하며 파고드는 스타일이지 아웃 복싱을 구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임치빈은 마사토와의 1라운드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사토가 워낙 테크닉이 뛰어난 파이터이기도 했지만 임치빈이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는 것을 트레이너인 공관장도 처음 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떻게 서있었는지도 모르게 3분을 보내고 2라운드 공을 울리면서 임치빈도 다소 안정을 찾아 가는 듯 보였다. 2라운드 초반 1분 30초까지는 본래의 임치빈의 파이팅이 나오는 듯 했다. 이날 경기 중 마사토와 대등히 맞선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이때 안정을 되찾은게 아니라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마지막 발악을 했었던 것이었다.

2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온 임치빈은 세컨을 보고 있던 공선택 관장에게 '힘이 다 빠졌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평생을 5라운드 무에타이 경기를 뛰던 임치빈이 3라운드 경기인 K-1 룰이 체력적인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펀치와 킥을 날리기 위해 말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고 그 결과 체력이 급속히 떨어졌던 것 이었다. 그렇게 임치빈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내보지도 못한채 링을 내려와야 했다. 임치빈은 2라운드 후반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억을 잘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왜 임치빈이라고 마사토를 꿈꾸지 않았겠는가? 마사토야 다음에도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지만 임치빈은 일생일대의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끽해봐야 장충체육관에서나 뛰었던 임치빈도 마사토를 앞에두고는 순간 록본기 거리를 벤츠를 타고 누비는 마사토를 잠시나마 꿈꾸었을 것이다. 실제로 임치빈이 고바야시에 이어 마사토까지 멋지게 제압했다면 마사토가 그때까지 이루워놓은 모든 것을 전부 가질 수는 없었을지는 몰라도 한번에 상상치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경기게 자신의 일생을 걸어도 좋을 순간에도 임치빈은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세계 최고의 격투 이벤트의 한 가운데에서 서서 보자 TV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을 것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뒤이어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임치빈 같이 좋은 재목의 파이터가 일찍부터 큰 무대에서 착실하게 경기 경험을 쌓았으면 어땠을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는 법 이지만... 임치빈의 재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임치빈 자신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임치빈에게 다시 기회가 올지 확답할 수는 없다.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올 하반기 K-1 서울 대회에가 가시화 된다면 임치빈은 출전 1순위가 될 것이다. 단순히 직접 본 것 만으로도 때로는 그 자체가 훌륭한 경험이 된다. 그 경험을 다시는 잊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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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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