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이 멘탈을 구축한다'('Physical' drives out 'Mental')

'약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이 있다. 정확한 경제학적 의미는 모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레샴의 법칙'이다. 흔히 일상에서는 나쁜 것이 좋은 것들을 몰아낸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K-1 네덜란드 GP에서 밥샵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득 이 말에 대입하여 '피지컬이 멘탈을 구축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밥 샵이 '나쁜 것(?)'에 속한다는 것은 아니다.

밥 샵은 대표적인 '피지컬(Physical) 형' 선수로 분류된다. 타고난 체격과 엄청난 근육 벌크를 바탕으로 파워를 앞세운 격투 스타일로 K-1의 스타 파이터로 자리잡았다. 공이 울림과 동시에 튀어 나가서는 쉴새없이 펀치를 휘둘러대는 스타일은 정교한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관객들은 열광했다.

관객들은 열광했을지 몰라도, 선수들은 기겁 했었다. 엄청난 포스를 풍기는 덩치뿐만 아니라 웬만한 허벅지 둘레의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펀치앞에서는 위빙이고 더킹이고, 가드며 클린치며 모두 다 소용없었다. 아무리 펀치 테크닉이 없더라도 럭키 펀치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한방 한방이 넉다운 감이었다. 실제로 '불세출의 격투가'로 불리던 어네스트 호스트도 밥샵의 막펀치에 무릎을 꿇은적이 있었을 정도.... 물론 호스트가 격투가로서의 자긍심을 포기하고 로우킥을 계속 고집했었더라면 당연히 호스트가 승리했겠지만 어쨌든 밥 샵의 최대 업적은 호스트를 상대로 띠낸 이 1 승이었다.

밥 샵이 K-1을 넘어 CF, 방송계까지 영역을 확장한 '격투스타'인 것은 반론의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누구도 그를 격투가로 여기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최근에는 샘 그레코에게 본격적인 킥복싱 훈련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관중들의 인식속에서는 언제나 '근육질의 덩치'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밥 샵의 무도가로서의 자세나 정신력에 대한 평가는 혹평에 가깝다. 실제로 시합중에 고통을 참지 못해 얼굴이 일그러 뜨리기 일수였고,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 주저앉은적도 부지기수 였다. 언제나 체력은 1회전 첫 번째 펀치러쉬 이후부터 바닥이었고, 심지어는 눈물을 보인적도 있다. 그 육체를 제외한다면 링위에 올릴 만한것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악평이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닐 정도이다.

뱝 샵이 전형적인 '피지컬'형 선수라면 그 반대편에는 누가 있을까? '미스터 K-1'으로 불렸던 앤디 훅과 대비해보면 똑같은 격투스타였지만 뭔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으로 한번 패배한 선수에게 반드시 설욕했던 앤디 훅은 '리벤지의 제왕'으로 불렸었다.

실제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리벤지 매치는 2:1로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당연히 전에 자신을 제압했던 상대방이고, 나머지는 패배를 기억하고 있는 자기 자신... 그렇게 두명의 상대와의 승부에서 승리해야 리벤지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기량 뿐만아니라 정신적인 강함이 뒷받침되어야만 리벤지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어렵다는 리벤지 매치를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거의 모든 상대를 대상으로 해냈다면은 육체 외에도 그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일종의 '멘탈(Mental;정신력)'이 아닐까 한다. 투혼(鬪魂)이나 무도가정신, 일본에서는 곧잘 사무라이 정신으로 부르는 '그 무엇'의 실체야 말로 격투 스포츠의 매력의 실체가 아닐까? 격투 스포츠를 길거리 싸움과 분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차이도 이런 무혼이 있기 때문이 일것이다.

맨몸으로 최소한의 도구와 최소한의 룰로 겨루는 격투 스포츠는 가장 육체적인 스포츠인 동시에, 또한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이기도 하다. 단 둘만이 올라가 있는 링 위에서 반드시 상대를 꺽어야지만 내려올 수 있다는 압박감은 일반인들 상상 이상일 것 이다. 더군다나 두 선수 사이의 상대성이 극대화된 경기인 만큼 전략 전술에 관한 심리전도 만만치 않다. 고통과 부상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정신적인 압박이다. 프로 스포츠인 만큼 부상 곡 실직을 의미할진데, 꼭 돈이 아니더라도 부상과 고통은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격투 스포츠를 감히 멘탈 스포츠로 분류하는 것 이다.

밥 샵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 무단이탈 사건으로 인해 그의 정신력에 대한 평가는 이번에야 말로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 같다. 일단, 호스트라는 '불세출의 격투가'의 은퇴 시합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런 추태를 보였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K-1의 다니가와 프로듀서가 밣혔듯이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요구'를 해왔다고 알려졌는데, 그 요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격투가로서 약속된 경기에 나서지 않고 이탈했다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관중들에 대한 약속파기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선배 격투가의 마지막 은퇴경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씻기 어려운 엄청난 과오임에 틀림없다. K-1이 아니라면 프라이드도 괜찮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관중들의 마음에서 떠났다면 어떤 무대든 환영받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연, 피지컬이 멘탈을 구축할까? NFL이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격투 스포츠에서는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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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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