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서울대회 포스터이번 K-1 WGP 서울대회는 어떤 때보다 기다려왔던 대회였지만 그 어떤 대회보다도 씁슬했던 대회였다.

최홍만을 앞세운 돈벌이에만 급급한 FEG 측의 작태를 시작으로, 도무지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대진, 그리고 브레이크 타임조차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레프리들의 수준 낮은 경기운영, 고질적인 불투명한 판정문제까지...

한국 격투스포츠 최대의 행사인 만큼 즐거워야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못해 쓴맛이 돌 정도이다. 세계적 수준의 격투스포츠 이벤트인 K-1 명성에 걸맞는 것은 피터 아츠의 하이킥과 레이 세포가 부메랑 훅에서 터진 두번의 실신 KO 장면 뿐이었던 최악의 대회였다.

종합격투가인 김민수가 입식 타격 데뷔무대에서 2연승을 기록하며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격투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냈을 뿐이다. 물론, 김민수가 유도를 베이스로 한 선수치고는 타격 센스를 타고났다는 것과 근성과 악으로 똘똘 뭉친 멋진 파이터라는 점은 이견이 없다. 김민수가 아니었다면 서울대회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해외선수들만의 잔치가 되었을 생각을 하면 오히려 김민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정도이다.

씨름선수 출신의 김동욱과 김경석도 적지않은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점은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김동욱은 태국에 까지 가서 현지 무에타이 선수들과 합숙을 하며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체격조건과 기초체력에 관해서는 외국 전문 파이터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겠지만 역시 문제는 기술의 부재. 단 몇 개월의 훈련만으로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박영수와 이면주의 승리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싶다. 비록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오프닝 파이트와 리저브 파이트에서 올린 승리였지만 이 두 선수의 승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작지만 의미있는 승리라고 해야 할까? 김민수의 준우승도 기뻐 마땅한 일이지만 박영수와 이면주의 승리가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값진 승리로 다가왔다.
좌측: 박영수/ 우측: 이면주

잘 알다시피 일본의 입식타격을 지탱하고 있는 양대 산맥은 가라데와 킥복싱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격투스포츠 이벤트인 K-1이 존재할수 있었던 그 뿌리도 사실은 가라데와 킥복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경제대국의 자금력과 사무라이 문화 등 이외에도 많은 흥행요소들이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가라데와 킥복싱이 받춰주지 않았다면 K-1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해보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일본에 가라데가 있다면 우리는 태권도가 있고, 우리쪽에도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킥복싱은 그렇다 치더라도 태권도만 비교하면 오히려 우리쪽이 훨씬 더 저변이 넓지 않을까? 합기도와 특공무술 등 동네에 하나쯤은 꼭있는 무수한 도장만을 본다면 우리는 진작부터 입식 타격 강국이었어야 했을 정도이다.

우리의 '국기(國技)'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무예중에 하나이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가장 체계화된 스포츠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요즘의 격투 스포츠가 아니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울만큼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격투 스포츠가 뜨면서 실전성이 철저히 거세된 우리의 '국기(國技)'에 대해 미쳐 몰랐던 아쉬운 점이 생겼을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높은 보급율과 폭넓은 저변을 조금만 활용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격투 스포츠는 태생부터 그 양상이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태권도는 그래도 국기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직도 반듯한 단체하나 없이 킥복싱과 무에타이의 원조 논란으로 여러개의 단체들이 파벌싸움을 계속하느라 체계적인 발전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대부분 생업과 병행해가며 변변히 정기적으로 나갈 대회 조차 없는 상황이다. 허름하고 어두 침침한 아파트 상가 2층의 체육관을 벗어나지 못한채...

이런 상황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박영수가 K-1 링위에서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이면주가 여러차례의 도전 끝에 K-1 무대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는 것은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박영수가 태권도 계의 전폭적인 지원 끝에 K-1 무대에 전략적으로 진출했다거나 태권도의 실전성을 체계적으로 개발해 본격적으로 K-1 정벌에 나섰다거나 하는 쪽과는 거리가 먼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었지만, 그 뿌리가 태권도라는 것만 해도 수많은 태권도 수련자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러주었다는 의미를 줄 수 있다.

물론 씨름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무예인 것은 틀림없지만 어디까지나 입식타격에는 초보자일 수 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씨름꾼보다는 평생 발기술을 연마한 태권도 선수들이 훨씬 더 잠재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입식타격 전문 파이터 이면주가 몇차례의 도전 끝에 첫 승을 거둔것은 더 효과가 직접적이다. 국내외 무대를 통해 열띤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곽윤섭 김신겸 유양래 등 한국 입식타격 헤비급 빅4의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자극제가 없다. 차근차근 훈련을 거듭하며 빅4를 뒤따르는 젋은 선수들까지 감안해본다면 이면주의 이번 승리는 말그대로 세계정상급 무대에 늦었지만 이제 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프라이드FC에 우연찮은 기회로 최무배가 출전기회를 얻고 가서 투혼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데니스강이나 윤동식, 그리고 이번에 데뷔전을 가지는 어원진까지 한국파이터들이 프라이드 무대에 서기까지는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면주의 이번 승리가 어려운 상항속에서도 열심히 땀흘리는 입식타격 전문 선수들에게, 박영수의 승리가 무수한 잠재력을 지닌 태권도인들에게 다만 일부라도 자극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한번 호들갑을 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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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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