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에는 태권도가 없다?
'K-1'은 잘 알려져 있듯이 가라데(Karate), 킥복싱(Kick-boxing), 쿵푸(Kung-fu), 권법(Kenpo) 등 입식타격기의 최고봉(1)을 가리기 위한 무대라는 의미이다. 초창기 때부터 봐왔던 골수 팬들이라면 꽤 오랜 기간 사용했던 시그널 영상에 이런 무술들의 이름이 나오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초창기 K-1의 'K'에 태권도(taeKwon-do)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위의 그 영상물에도 분명히 태권도의 대목도 있었다. 입식타격기의 최고무대로 평가 받는 현재의 K-1 무대에는 태권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태권도는 없다'라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태권도는 178개국에서 6,000만 명의 수련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규모의 격투 스포츠이다. 우리나라는 종주국답게 무려 등록 선수만 무려 8,000여명을 보유하고 있다. 복싱과 레슬링, 유도에 이어 당당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세계최고의 격투스포츠이며 무예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격투스포츠인 태권도가 단 한 명의 K-1 파이터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문을 넘어 미스터리에 가깝다.
 
물론, K-1의 많은 파이터들이 태권도를 경험한 적이 있고, ITF를 중심으로 몇몇 태권도 파이터들이 실제로 출전한 적은 있었으나 크게 각광받은 적은 없었다. K-1 주최측의 인사들도 이와 같은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끊임없이 태권도 파이터를 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었다.
 
2002년 K-1 맥스 대회에 출전했던 김진우도 사실 킥복서에 가까웠지만, 계약 당시 주최측에서 태권도 스타일로 싸워줄 것을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었다. 김진우는 당시 일본의 스도 겐키를 맞아 회축으로 경기를 시작했었고 몇 차례 위력적인 뒤후려차기를 선보이기는 했으나, 경기 내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고전하다 끝내 백 스핀 블로우에 KO패 했던 일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크로캅의 하이킥에 '태권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신예 루슬란 카라예프가 어깨너머로 배운 태권도를 실제 링에서 선보이기도 했지만, 태권도를 주 종목으로 하는 파이터로 보기는 어렵다. 전세계적으로 6000만 명의 수련자를 보유한 태권도에서 입식타격의 최고 무대에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는 것은 미스터리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태권도 파이터의 출현
이런 상황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박용수의 K-1 진출은 확실히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현재 IOC 규정상 최대 4개 체급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활동을 했다는 것은 세계 톱 클래스의 태권도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황제' 김제경과 김경훈, 그리고 '영웅' 문대성이 버티고 있었던 헤비급 출신을 감안하면 박용수야 말로 비운의 파이터였을 것이다.
 
박용수를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본격적인 태권도 파이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2m의 110kg이라는 하드웨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거대화 되어가고 있는 K-1 월드 그랑프리의 금작의 상황에서 이제 하드웨어는 필수요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하드웨어를 갖춘 선수가 체중이 실린 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잠재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태권도 종주국의 정상급 태권도 선수 출신 K-1 파이터의 출현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태권도는 단순한 격투기나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은 구구절절 히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부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예와 무도를 넘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 시킬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추앙 받는, 말 그대로 '국기(國技)’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격투술이 아니라 문화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발현에 가깝다.
실제로 동네 도장에 다니는 꼬마들까지도 격투술 보다는 심신 수양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박용수 선수의 출전이 알려졌을 때, 일각에서는 태권도 관련 게시판에서 일부 태권도인들이 'K-1은 태권도가 아니니, 도복은 착용하지 말라'고 주문한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통 무예인 태권도의 명예를 K-1과 같은 근본도 없는(?) 잡기술에 농락되는 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보면 비약일까?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으며, 박용수 선수가 K-1에서 패배할 경우 그 '분위기'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미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경험했을 수 도 있다.
 
경기용 태권도, K-1에서도 통할까?
각종 무술, 격투 관련 게시판 등에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왜 태권도는 실전에서 약한가?'라는 질문이다. 요는 '태권도의 실전성'에 대한 회의 내지는 의구심일 텐데, 이와 같은 회의와 의심은 사실 실제로 주변에서 발에 치이도록 많이 거론되는 주제 중에 하나이다.
 
K-1을 비롯한 현재의 프로페셔널 격투스포츠에서는 물론 길거리에서도 태권도는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면으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종목인 '겨루기' 경기에 국한시켜 봐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태권도 경기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최적화된 태권도로 국한시켜 격투 스포츠에 적용해보면 실제로 몇 가지 불안요소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태권도의 실전성에 대한 회의에 대한 기술적인 원인이나 K-1 등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갖는 상대적인 불안요소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경기용 태권도가 갖는 위험요소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하스텝'이다. 3분 3회전 경기 내내 엄청난 칼로리를 소모하면서 끊임없이 스텝을 밟지만 대부분 상하로 움직이는 스텝 일색이다. 타이밍을 맞춰 공격하기 위한 준비 동작으로서의 역할이 강한데, 링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좌우로 회전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스텝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더군다나 일정한 타이밍으로 뛰었다 내리기가 반복된다면, 뛰어 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카운터 펀치를 허용할 가능성도 매우 커진다.
 
수년간 태권도를 해 온 사람이라면 습관적으로 상하스텝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습성이 분명있다. 태권도 경기 시 역습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은 스텝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가드에 문제가 생긴다. 최근에는 이런 스타일의 선수들이 많은 추세인데, 하나같이 빠른 역습을 위해 가드를 내리고 기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이 세포가 아니라면 K-1 링 위에서는 노-가드는 금기사항이다. 원채 가드가 견실한 편은 아닌 태권도 파이터들은 최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부분이 아마 이 가드 일 것이다.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킥을 구사하는 타이밍에서 발견되는 자세의 불안정성이다. 쉽게 말하면, 킥을 찰 때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태권도 가장 무기 중에 하나인 큰 발기술을 구사할 때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안정적인 스텐스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드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으면서도 킥을 날리는 것은 물론 그 위력도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동시에 다음 공격 및 역습 방어를 위한 리커버리 동작도 고려해야 한다. 태권도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넘어지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킥을 찰 때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화려하고 시원스러운 발차기가 태권도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이종격투에서는 오히려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최영의 선생도 일찍이 간합(間合)에 대해 대단히 중요하게 언급한 바 있다. ‘거리’, 즉 레인지(Range)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는 것인데, 태권도의 근거리는 별다른 공격기술도 없는데다가 견고한 방어도 어렵다. 펀치와 킥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다양한 거리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데, 태권도는 원거리에서는 막강하지만 근거리에서는 매우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강력한 원거리 공격도 고정되어 있는 미트나 송판이 아니라 움직이는 상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태권도가 가진 강점도 사실상 상당부분 상쇄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민한 연속 발차기는 놀라운 무기이지만, 킥 중심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으로는 K-1 파이터들을 제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양한 거리 상황에 따라 다양한 펀치-킥의 조합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전 적용 가능한 킥 기술이 원채 많이 않은데다가 원-펀치 룰과 얼굴 가격 금지라는 멍에로 양 손이 묶인 태권도 선수들이 이종격투 무대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태권도, 격투기로서의 잠재력은?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확산속도와 수련인구를 가진 태권도에게 이종격투로서의 가능성인 전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태권도가 손과 발을 쓰는 맨손 격투 술에서 출발한 무술인 이상 격투기로서의 잠재력은 분명히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태권도로서의 가장 큰 잠재력은 우선 무궁무진한 재원에 있다. 등록된 수련인구만 6,000만 명이라면 그 엄청난 계층구조만으로도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밥 먹고 태권도만 하는 선수만 8,000명을 보유한 우리나라 태권도의 잠재력은 K-1 무대를 '변방의 잡기술'로 하대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격투가 에게는 축복이다. 가공할만한 스피드에 순발력까지 갖췄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복서가 잽을 구사하듯이 양 발 나래 차기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럽다. 실제로 박용수 선수도 루틴 한 연습 외에 별도로 킥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 백 번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종격투에서 태권도의 잠재력의 대 전제는 '태권도의 발차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발차기를 버려야 한다'는 역설에 있다. 태권도의 발차기만을 고집해서는 절대 이종 격투무대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태권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다른 'K'들도 자신의 종목을 포기하고 나서야 K-1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짧지만 분명한 K-1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K-1의 아이콘인 앤디 훅도 극진의 가라데가였을 때 K-1 링 위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바 있다. 패트릭 스미스와의 실질적인 데뷔 전에서 앤디는 가라데를 버리지 못했고, 10카운트 룰을 활용하지 않고 가라데 식으로 급하게 일어났다가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앤디 훅만이 아니다. K-1 링 위에 오른 가라데 출신의 파이터들 중에 가라데 스타일을 고수하는 파이터라고는 가쿠다 노부야키 심판장 밖에 없다. 대부분의 가라데 선수들을 이력을 일부러 들추어보기 전에는 경기 모습만 보고 가라데 수련자였던 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이다.
 
입식격투 최강으로 손꼽히는 무에 타이의 경우는 어떤가? 맥스 챔피언 쁘아까오는 복서 수준으로 펀치 스킬을 보강하고 나서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다는 것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여담이지만, 낙무아이 들에게 K-1 룰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룰이다. 무에 타이의 강점으로 강력한 로우킥을 꼽는 전문가들도 많은데, 실제 태국 무에 타이 무대에서는 로우킥을 공격포인트로 채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지 의문이다. 낙무아이들에게는 로우킥이 주 공격무기가 아니라, 견제 수단일 뿐이다. 대부분 미들킥 공방 일색으로 태권도가 그런 평가를 받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경기 내용은 아니다.
 
태권도의 실전성에 대해 논하면서 단연 가상의 상대로 많이 거론되는 복서의 경우는 어떤가? 현재 K-1 파이터들 중에 복싱을 하지 않는 파이터들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복싱만 하는 선수도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K-1과 PRIDE FC를 망라한 그 어떤 메이저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더 이상 어느 한 무도를 가지고는 절대 승산이 없다는 것은 이제 진리에 가깝다. 이는 곧 태권도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이며, 그래서 역설적으로 '태권도를 버려야 태권도를 살릴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킥 스페셜리스트'들이여~ K-1에 도전하라!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박용수의 K-1 도전은 태권도 전체로 보았을 때 이제 이종격투 무대에 첫발을 내 딛는 것이나 다름없다. 태권도에 실전성이 없다는 것은 실전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 실전성이 없는 무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전하여 경험해 본 후 적용하고 수정하는 반복 과정을 통해 적절하게 튜닝(tuning)해야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권도 내부의 시각 변화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종격투기를 무도의 근본도 없는 길거리 싸움으로 치부하고 마음을 닫는 이상, 경험해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또 다른 스포츠, 또 다른 시장으로 인정한다면 양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교류를 통해 상호 호혜적인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종목으로 인정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태권도 내부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한 룰 개정 등 보완책을 현실화 해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목적은 '올림픽 정식종목 고수를 위한 흥행'이라는 데서 출발했지만, 상당부분 태권도의 실전성 부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위력적이며 기민한 킥 능력을 갖춘 재원이라면 입식격투 무대에서 절반은 갖추고 시작하는 셈이다. 복서들이 킥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는 킥 전문선수가 복싱을 배우는 편이 몇배는 더 수월하다. 하물며 타격과는 전혀 무관한 씨름 선수들에 비하면 앞서도 언급했지만 축북받은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 역사상 유래 없는 속도로 세계로 전파해 낸 태권도인들의 실행력과 장악력이라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단시간 내에 많은 것을 이루어 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에 감히 어렵게 주문을 해본다.
수많은 킥 스페셜리스트들이여...... 과감하게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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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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