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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 월드그랑프리 2006 오사카 개막전] 일시: 2006년 9월 30일 오후 4시 장소: 일본 오사카돔 경기: 2006 WGP 16강전 8경기
기술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K-1 WGP 챔피언 벨트의 새 주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자 여지없이 '기술'이 빛을 발했다. '테크닉의 르네상스'라고해야 맞는 표현일까? 이번 K-1 오사카 개막전은 한마디로 평가하면 "기술의 향연(饗宴)"이다.
기술은 절대 거짓이 없다.
테크니션의 부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는 역시 레미 본야스키(네덜란드/팀 본야스키)와 게리 굿리지(트리니나드/팀 고리키)의 제 2경기. 전형적인 '힘과 기술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 경기는 왕년의 밥 샵과 호스트의 경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내와 코치와 벨트을 모두 잃었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출전한 본야스키는 '기술'에 모든 것을 걸었고, 굿리지 역시 '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본야스키는 오늘 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보여줬다. 로우킥으로 시작해 미들과 하이를 넘나들고 니킥 콤비네이션에다가 브라질리언 킥, 마무리로 전매특허인 플라잉 니킥까지... 1라운드부터 수준높은 킥 기술로 게리를 실신 KO 직전까지 몰고 갔다.
기술이 없으면 극단적인 전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힘에 의존한 극단적인 전술인데, 이날 굿리지가 꼭 이 경우였다. '팔을 내주고 대신 머리를 노리겠다'는 식으로 킥을 맞으면서 거리를 좁혀들어갔지만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치 않았다. 극단적으로 바디를 노렸지만 본야스키의 다양한 콤비네이션을 단번에 제압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반면 다양한 기술이 있는 본야스키는 자신이 가진 다양한 기술을 상황에 맞게 조합해 내기만 하면 끝이었다. 3라운드 초반에 니킥과 오른손 스트레이트 하이킥으로 이어지는 멋진 콤비네이션을 연출한 본야스키의 KO장면은 기술향연의 하이라이트나 다름 없었다.
앞서열린 바다 하리(네덜란드/쇼타임)와 루슬란 카라예프(러시아/마르폴로)의 제1경기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엄연한 기술의 승리였다. 바다 하리가 다운 당하면서 로우킥에 맞은 건 사실이지만, 그전에 카라예프의 왼손 훅에 이미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바다 하리의 로우킥에 카라예프의 회심의 왼손 카운터 훅이 날아들었고, 이를 가까스로 피한 바다 하리의 중심이 무너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따라들어간 카라예프의 왼손 훅이 바다 하리의 관자놀이 부위에 정확하게 꽂혔던 것. 관자놀이는 급소중에 급소로서 무의식 중에 신체를 제어하지 못하게 한다. 코너를 등지고 천천히 무너지는 중간에 카라예프의 로우킥에 맞은 것에 대해 바다 하리가 강력하게 항의 했지만, 그 전에 왼손 훅을 허용한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패배였다.
'종이 한 장 차이'의 기술이 승패를 가른다
본야스키와 굿리지가 기술과 힘의 격돌이었다면, 글라우베 페이토자(브라질/극진회관-팀 일격)와 폴 슬로윈스키(호주/파인더스 유니 무에타이짐)의 제3경기는 '기술 대 기술'의 격돌이었다. 3분 3회전 경기 내내 쉬지 않고 타격 공방을 한 두 선수는 모두 멋진 기술을 선보였다. 승부를 가른 것은 역시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경험과 기 량차이... 슬로윈스키의 너무나 정직한 타격은 완급조절에 능해 적중율 높은 타격을 구사하는 페이토자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근성과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성실한 자세는 높이 평가받아 차세대 K-1 영건의 한 자리를 꿰찼지만, 도쿄돔행은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대회 전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세미 슐츠(네덜란드/골든글로리-정도회관)와 비욘 브레기(스위스/마이크스짐)와 '빅 타워' 대결도 종이 한장의 기술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신세대 빅 타워와 원조 빅타워의 제4경기에서 브레기는 펀치에 모든 것을 걸고 올라왔지만 슐츠의 왼손 스트레이트가 훨씬 품질이 높았다. 스트레이트 세방에 다운 세번, 경제적인 공격을 한 슐츠가 무난히 도쿄돔 티켓을 손에 넣었다.
사실 브레기가 올 해 전 경기 KO행진을 벌이며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사실이나, 슐츠를 넘어설 기술이 모자랐기 때문에 의욕으로 메우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극강(極强)'으로 평가받는 슐츠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스피드 였는데, 브레기에게는 이를 공략할만한 스피드가 없었고 오히려 슐츠의 스피드는 배가 된 상태라, 승부는 불을 보듯 했다.
기술, 그 다음은 전략전술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어디서 승부가 날까? 기술 다음은 전략 전술이다. 이를 여실히 증명한 파이터가 바로 스테판 레코(독일/골든글로리)로 제5경기에서 레이 세포(뉴질랜드/레이세포 파이팅 아카데미)라는 거함을 격침 시켰다. 레코의 이날 필승 전략은 치고 빠지는 '히트 앤 어웨이(Hit & Away)'. 1회전 부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세포는 큰 것을 노렸고 레코는 철저히 거리를 계산했다.
거리 계산이 끝난 후 레코는 철저히 '히트 앤 어웨이'로 절대 세포가 좋아하는 거리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잔 포인트를 쌓아갔다. 그러나 애써 따낸 포인트는 철저히 뒤로 후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K-1 심판진에게 모두 깍여나가고 없는 상태. 세포의 부메랑 훅과 '명품' 어퍼컷은 차례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한 것도 아니었다.
보기드문 심판전원일치 만점 판정으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나갔지만 세포는 이미 체력이 떨어진 상태. 연장 라운드에서도 마치 1라운드 처럼 왼손 잽으로 기본에 충실한 레코가 끝내 최고 스타 세포를 탈락시키며 K-1 복귀를 자축했다.
레코가 전략에 성공한 경우라면, 후지모코 유스케(일본/몬스터팩토리)는 전술운용에 실패한 경우에 해당된다. K-1측의 간곡한 요청에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전설 어네스트 호스트(네덜란드/팀 Mr.퍼펙트)를 맞아 바디 블로우와 큰 펀치를 노리는 전술을 선택한 후지모토는 호스트를 흔드는데는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미스터 퍼펙트' 호스트. 전성기 때의 기량에는 훨씬 못 미췄지만 거리를 제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호스트는 후지모토의 보디 블로우에 로우킥으로 맞섰다. 만약 호스트가 로우킥만 고집했더라면 더 많은 승리를 따냈을 것이라 평가받는 호스트의 로우킥은 그냥 맞아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2라운드에서 과부하가 걸려버린 후지모토는 체력이 떨어진 끝에 호스트의 로우킥에 무릎을 꿇었다. 후지모토는 호스트의 강력한 로우킥에 대해 전술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다 잡은 대어를 놓쳤고, 호스트는 자신의 은퇴경기를 WGP의 메카인 도쿄돔으로 연장시켰다.
무사시(일본/정도회관)도 역시 전술운용에 실패한 경우였다. 주최측의 변함없는 배려로 상대적으로 가장 상대하기 수월한 상대인 할리드 '디 파우스트'(네덜란드/골든글로리)를 맞아 제7경기에 들어선 무사시는 자충수에 걸려 탈락했다.
체구는 작지만 강력한 펀치력을 지닌 할리드의 가공할 오른손 펀치를 피하기 위해 무사시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오른손을 견제하면서 로우킥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결과는 실패. 할리드가 오소독스와 사우스포를 적절히 바꿔가는 스위치 타법을 계산에 넣지 못하고 오히려 왼손에 당했다. 할리드가 조금만 사우스포에 재능이 있었으면 KO 패를 당했을 것이다.
자신의 유일한 장점인 킥도 살리지 못하고 할리드에게 뭇매를 맞은 무사시는 판정에서 2:1로 패배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후지모토가 이미 탈락한 상황에서 결승전 흥행을 고려하면 예전처럼 연장이라도 주었을텐데, 최홍만이라는 대체재를 염두해 두었던 것인지 일본 파이터들이 모두 탈락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태크니션 최홍만? 최홍만의 전술은?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관심이 쏠렸던 최홍만(한국/프리)의 기술과 전술, 전략은 어땠을까? 최홍만은 이날 K-1 진출 후 가장 난적인 제롬 르 밴너(프랑스/르밴너 익스트림팀)와 마지막 경기에서 격돌했다.
제롬은 베테랑 다운 면모를 여실히 나타냈다. 1라운드부터 로우 킥으로 치밀하게 거리측량을 해 나갔고, 안다리를 살짝 걸치는 로우킥으로 최홍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2라운드 들어서도 밴너의 지근거리에서의 펀치를 의식한 최홍만이 쉽게 들어가지 못했고 밴너는 제집 드나들듯이 최홍만의 리치 안으로 침투하여 단발 로우킥과 바디 블로우, 미들킥을 성공시켰다.
최홍만에게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 2라운드에 각각 한차례씩 최홍만이 펀치러시를 들어갔고 1라운드에서는 한층 가뿐해진 밴너가 돌아나오며 피했지만 2라운드에서는 최홍만도 포인트를 따냈다. 2라운드 중반 최홍만이 한차례 러시를 들어가자 밴너가 물러서지 않고 맞서면서 난타전 양상을 띠었고 오히려 최홍만의 펀치가 몇차례 성공하기도 했다.
3라운드에서 최홍만의 왼손이 늦었지만 조금씩 살아나며 한차례 더 러시를 성공시켰지만 밴너의 강펀치와 로우킥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좀처럼 전지 스텝을 밟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체중을 실치 못하면 체중차에서 오는 장점을 활용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한 발짝만 더 앞으로 나갔으면 경기 양상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최홍만의 오늘 경기는 기술적으로도 왼손을 전혀 살리지 못하면서 그간의 연습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펀치 테크닉은 지난 아케보노 전 보다도 퇴보한 느낌이었다. 전략전술에서도 예전부터 고수해 온 기다리다 받아치는 전술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오늘 밴너 전에서도 명확해 졌지만 발은 느리지만 상대를 압박해 들어가는 러시 쪽이 훨씬 더 적중율이 높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 졌다. 최홍만의 느린 발은 최소한 러시 상황이라면 긴 리치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연장라운드에서 최홍만이 공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심판진들은 이전 3라운드까지 함께 채점했던 것 같다. 결과는 밴너의 심판전원일치 판정승. 연장 라운드만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경기를 본다면 분명 최홍만의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석패였다. 아쉽게도 최홍만은 올해 도쿄돔 티켓을 자력으로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해 졌다.
혹시 최홍만이 리저버로 도쿄돔에 가게 된다면, 오늘 밴너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진 경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오래된 명언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도쿄돔행이 결정 된다면 어차피 두달여 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연습은 앤디 훅 처럼 하되, 경기는 밥 샵처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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