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오타쿠, 초살의 서브미션 아티스트 아오키 신야 집중 해부
아오키 신야
생년월일: 1983 년5 월9 일
출신지: 일본 시즈오카현
신장: 180 cm
체중: 72.6 kg
베이스: 유도, 유술
닉네임: 도관십단
입장곡: Baka survivor(바보 서바이버)
주요 타이틀: 제8대 슈토 세계 미들급 챔피언(현재 1차방어 중)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세 번 놀랐다.
프라이드 FC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속칭 '쫄쫄이' 타이즈 경기복에 무엇보다 놀랐고,
경이적인 유연성을 바탕으로 러버 가드를 자유자재로 쓰는 경기 스타일에 두 번 놀랐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역시 아직도 '순수형 그래플러'가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 연승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란타이즈의 사나이' 아오키 신야
한때 주짓떼로와 서브미션 레슬러들이 MMA 최강으로 군림했던 적이 있었다. 프라이드 FC 역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정점으로 엄청난 효율성을 자랑하며 승리를 독식 하다시피 했었던 시절이었다. 사실 주짓수와 서브미션이 단 한번의 기회로 탭 아웃을 받아내 경기를 끝낼 수 있다는 효율성 때문에 오히려 흥행을 저하시킨다는 역설이 존재했다. 실제로 입식 타격에 비해 서브미션의 기술체계 또한 그 수준과 수련수준, 그리고 구사하는데 있어서의 하등 차이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림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라이드 FC를 비롯한 MMA 대회에서 앞다투어 룰 개정을 도입했고, 상대적으로 그래플러에게 가혹한 굴레가 씌워졌다. 점차 타격가들과 균형을 맞추는 것을 지나 중심이 기우는 듯 했고, 서브미션 전문 선수들과 주짓떼로 들도 전문 타격가 수준의 타격을 갖춘 '진화형 그래플러'들이 각광을 받으며 현재에 이른 것은 격투 팬들이라면 모두들 잘 아는 내용일 것이다.
어쨌든 소위 '그림'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보아 뱀이 상대를 감은 채 천천히 조여오다 절명을 빼앗아 내는 듯한 그래플링의 숨막히는 묘미는 MMA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1000가지의 기술을 가졌다는 노게이라 마저 요즘은 경기시간 대부분을 복싱으로 보낼 정도이니, 그래플링 팬들에게는 어쩐지 서운한 구석이 있다.
‘순수형 그래플러’ 아오키의 성장
이런 금작의 상황 속에서 아오키 신야가 등장했을 때, 사실 큰 기대를 끌지 못했었다. 슈토의 챔피언이었지만, 대다수 팬들의 시각은 '프라이드FC와 수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서브미션을 주무기로 하는 아오키의 스타일로는 고미와 마하, 요아킴 한센 등 걸출한 타격가들이 버티고 있는 라이트급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예상도 한 몫 했다.
자기 스스로를 '기술 오타쿠'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오키는 '순수형 그래플러'에 가깝다. 비교적 큰 키를 지녔지만 체중에 파워를 실을 만큼의 체격조건은 아닌데다가, 긴 리치를 활용하는 타격기술도 익숙한 편은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긴 다리를 활용한 러버 가드를 주무기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프라이드 진출 후 아오키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의 대부분이었다.
'천재 그래플러'라고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아오키는 '천재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유도를 시작한 아오키는 유도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전국 학생 선수권 우승 경력이 있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즐비한 프라이드 FC에서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다. 요즘은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명문 와세다대(체육과학 전공) 유도부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이니 기본적인 역량은 갖춤 셈,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추측하기 어렵다.
어찌되었든 '천재'라는 칭호까지 붙일 정도이라면, 유도 쪽 보다는 역시 유술 쪽이다. 대학 재학 시절 일본격투의 살아있는 전설 나카이 유키를 만나면서 유술에 입문한 아오키는 유술에 매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유도와 주짓수, 발리 투도, 그래플링의 모든 기술이 1권으로 정리된 기술서를 내고 싶다"며 "'아오키 신야류(流)' 유술을 만들고 싶다" 밝힌 것으로 보면 MMA 파이터 이전에 '서브미션 기술' 자체에 대한 동경이 큰 선수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스로를 ‘기술 오타쿠’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보면 유술의 기술체계 자체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 파이터로서 가능성을 엿보인 것 역시 그래플링 토너먼트에 본격적으로 참여 하면서부터였다. 브라질리안 유술 검은 띠에 힉슨 그레이시가 주최한 부도 첼린지와 전일본 삼보 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그래플러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5년 ADCC 서브미션 레슬링 세계 선수권에서 베스트 8(무차별급)을 기록한 게 그래플러로서 최고 성적인데, 당시에 '괴물급'으로 분류되는 호저 그레이시에게 체중 차와 기량 차를 극복하지 못하기는 했으나 경량급 치고는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약관절기 10단
유술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도약관절기 10단'(줄여서 ‘도관십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립만 잡히면 점프를 해서라도 지렛대를 만들어내며 기술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루미나 사토에 '플라잉 암바'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점프를 하면서 짧은 순간에 기회를 포착해내는 능력은 분명히 인상적이었다.
파라에스트라 도쿄에서 수련 뒤 본격적으로 프로 격투 세계로 뛰어 든 것은 DEEP 진출부터. 이후 슈토로 옮겨 본격적으로 승수를 쌓아갔다. 슈토 시절 두 차례나 상대선수의 팔을 부러뜨릴 만큼 당시도 서브미션은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5전 만에 '그라운드의 대마신'으로 불리는 키쿠치 아키라를 상대로 슈토 미들급 타이틀 따내면서 비로소 '천재 그래플러'로 인정을 받았다. 실제로 아오키는 천재형 선수이기 보다는 '연습형'에 가깝지만, 기술에 대한 열정이 그를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슈토 시절, 아오키의 프라이드 FC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는 사쿠라이 '마하' 하야토와의 판정승부였는데, 석연찮은 판정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당시 시합에서 키쿠치가 등에 매달려 있던 아오키를 떼어내려고 스탠딩 상태에서 앞으로 덤플링을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상대를 등에 매단 채로 점프하여 회전한 키쿠치도 대단한 운동능력이었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거의 한 라운드 내내 백 포지션을 잃지 않던 아오키가 더욱 인상적 이었다.
프라이드에 와서 '극단적'이라고 까지 평가 받을 만큼 그라운드 중심의 플레이를 펼치지만, 슈토 시절은 조금 달랐다. 하이킥을 날리고 빰을 잡은 채 니킥을 하는 등 타격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지금과는 색다른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여주었다. 타이틀 매치 당시에도 키쿠치를 상대로 끈질기게 좋은 포지션을 잃지 않으면서 매섭게 파운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의외로 매서운 타격을 숨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프라이드의 노란 타이즈
무사도 12에서 '천재 그래플러'의 타이틀을 달고 입성한 아오키는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천재' 라면서 입장곡은 '바보 서바이버(Baka survivor)'를 틀고 나왔다. 주짓수 도복 차림에 좌우로 가볍게 뛰며 양팔을 돌리면서 워밍업을 할 때 까지만 해도 특이사항은 없었다. 인상도 그리 강렬한 편이 아니었고, 앞서 언급했듯이 체격 조건도 그의 강력함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입장곡에 대한 관심들이 많은데, 무사도 8에 출전한 바 있는 슈토 출신의 절친한 친구 다이스케 '아마존' 스기에와 같은 입장곡을 쓰기로 약속했을 뿐이 곡을 선택한 특별한 의미는 없단다.
아마도 대부분의 격투팬들이 그를 기억하게 만든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링 위에 올라가서는 선수 소개하면서 붉은 도복을 벗자 감춰 놓았던 노란색 타이즈가 드러났다. 삐쩍 마른 체구에 부담스러운 원색 타이즈는 민망함과 동시에 코믹함을 선사했다. 우리나라 격투 팬들이라면 그의 경기복을 보는 순간 아마 대부분 '통 아저씨'를 떠올렸을 것이다. 잔뜩 불량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상대를 노려보는 퍼포먼스(?)는 사실 그 타이즈 때문에 그 효과 반감된다.
여담이지만, 아오키는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프라이드나 히어로즈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이유로는 "무도(武道)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화 된 이벤트일 뿐"이라면서, 오히려 UFC 쪽을 꿈꾸었다고 한다. UFC도 무도와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UFC의 디에고 산체스와 꼭 한번 경기를 갖고 싶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어쨌든, 프로 MMA 무대 보다는 그래플링 대회나 서브미션 레슬링, 주짓수 대회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슈토 시절까지도 아오키에게 MMA는 직업의 영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와세다대 유도부를 탈퇴하면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운동도 계속하고 싶다'면서 돌연 경찰에 응시, 경시청에 근무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아오키 자신에게는 격투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격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경찰을 그만두고 나와 파이터로 복귀했다.
복귀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무대가 바로 프라이드 라이트급. 고미 라는 걸출한 챔피언이 버티고 있었지만 그를 호위(?)할 일본 파이터들이 기대만큼 성적을 내주지 못해, 적수가 없어 매너리즘에 빠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고미 또한 사실 휘청거리는 부분이 없지 않았기에 프라이드로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지, 대체 카드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미를 위해 차려진 무대였지만, 아오키에게도 기회의 조각이 돌아온 것이다.
‘초살 그래플링’으로 프라이드 4연승
프라이드 데뷔전인 제이슨 블랙 전부터 아오키의 '기술지향'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클레이 프렌치 전은 그라운드 플레이도 화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멋진 경기였다. 점프해서 가드로 상대를 끌어내려 가두는 아오키를 두고 '도약관절기'라는 링 네임이 어떻게 붙게 된 건지 알게 되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러버 가드에서 트라이앵글 쵸크로, 곧이어 오모플라타로 이어지는 서브미션 콤비네이션은 왜 아오키가 프라이드 무대에서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해준 경기였다. 역시 도약과 동시에 트라이앵글을 걸어내며 성공, 그대로 그립을 유지한 채 롤링하면서 탑으로 올라오며 탭 아웃을 받아냈다.
아오키는 이날 원래 경기를 갖기로 했던 길버트 멜렌데즈에게 12월에 꼭 경기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경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오키의 가치가 3연승으로 급상승 했던 것일까? 사실 당시에는 아오키가 남제에 출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2006년 남제에서 아오키는 그야말로 대형 사건을 터트린다.
요아킴 한센. 라이트급 챔피언 고미에게 생애 첫 패배를 안긴 장본인으로 라이트급의 차기 대권주자와 격돌하게 된 것. 한센이 타격에 확실한 절대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오키 입장에서 가장 큰 시험대가 된 일전이었다. 결과는 시험 합격. 그것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 했다.
이번에는 노란 원색 타이즈 대신 레인보우 타이즈로 심기일전 하고 나온 아오키는 눈빛이 이미 조연이기를 거부했다. 공이 울리고 요아킴이 소위 '간을 보기' 위해 날린 첫 로우킥을 잡아채며 그라운드로 끌고 내려갔다. 시종일관 탑 포지션에서 기회를 만들던 아오키는 첫 번째 암바를 시도, 요아킴이 스위치하며 포지션을 빼앗기자
노란 타이즈, 고미를 묶을 것인가?
아오키의 서브미션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빠르기 때문이다. 프라이드에 와서 총 4전 모두를 1라운드 초반에 승부를 지었다. 4경기 평균 경기시간 2분 46초. 그래플러 들에게 이 정도 시간이면 초살에 가깝다. '아오키 신야류'가 있다면 서브미션 초살 승부가 그 시류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래플링이라고 지루하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타격이 늘 박진감 넘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쩌면 '순수형 그래플러'들에게 아오키의 빠르고 정확한 서브미션은 어떻게 해야 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가늠자가 될 것이다.
요아킴을 침몰시키고 연승가도를 이어가자 아오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고미와 함께 등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고미를 맹추격하던 이바라키 3인방이 모두 침몰한 상태에서 아오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닐까 싶다. 타격 센스와 밸런스를 겸비한 고미마저 아오키의 노란 타이즈가 집어 삼키고 그래플러들에게 '기술' 르네상스가 다시 오게 될지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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