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유술)의 위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사실, 종합격투에서 유술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레이시 가문을 중심으로 한 브라질 유술이 종합 격투 스포츠의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뒤로도 10여년 동안 프라이드 FC와 UFC 링 위에 무수히 많은 주짓떼(주짓수 선수)를 올려 보내며, 실전 최강의 격투술로 군림해 왔던 것 도 사실이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프라이드 FC 챔피언 벨트를 빼앗긴 뒤부터 심심찮게 유술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거의 같은 시기에 UFC의 유술계 파이터인 프랭크 미어도 오토바이 사고로 자리를 비우자 '유술은 끝났다'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도 더럿 있었다. 유술의 대명사 격인 그레이시 집안의 격투가들도 세대교체와 선천적인 작은 체구 때문에 예전만큼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현대 종합 격투에서 사실상 타격계 선수와 유술계 선수라는 식으로 양분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별 의미도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의 호이스 그레이시를 시작으로 세계 격투계에 충격을 주던 시절에 비하면 유술이 확실이 약발이 떨어진 것 또한 어느정도는 사실이다.
전 세계 주요 종합격투 스포츠 이벤트에서 맹위를 떨치던 유술이 '몰락'했다는 극평까지 들을 정도로 '쇠락(?)'한 이유는 여럿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나타났다는 것. 호이스가 UFC에 처음 등장 했을 때는 격투가들 조차도 주짓수 메커니즘과 그 방어 기술에 대해 잘 몰랐던 시대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이제는 누가 어떤 무술의 베이스를 갖고 있는지 모두가 알고 있으며 어떤 스타일로 플레이를 전개하는지 어느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
유술이 가장 효과적일 때는 상대방이 내가 유술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이다. 이런 '의외성'이야 말로 유술의 가장 큰 위력이다. 상대방이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생각한 순간이라도 단 한순간의 허점이 생기면 유술가들은 언제든지 승부를 뒤엎을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제는 그 어떤 선수도 상대가 주짓떼라는 것을 안다면 섣불리 역전의 빌미가 되는 체중분배의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주짓떼들 입장에서 보면 공격의 기회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유술의 공격에 대한 방어 체계도 어느정도 갖추어졌다는 것도 유술의 위력이 반감된 큰 이유이다. 앞서 언급한 '외외성'은 만일 전혀 새로운 신기술을 구사하는 상황이라면 현재까지도 어느정도 위력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미 누군가가 단 한번이라도 실전에서 구사하여 상대를 제압해 보였다면, 제아무리 위력적인 신기술이라 해도 그 위력은 이미 반감된 상태하는 것이다. 그만큼 '실전 최강의 격투술'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되어 다음 경기를 가질 때 쯤엔 이미 테스트는 물론 역습까지도 준비해 나오는 시대이다. 이제는 등을 바닥에 댄 상태로 그 어떤 파이터도 쉽게 제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유술의 의외성이 퇴색하면서 동시에 '효율성'도 떨어졌다. 사실 유술의 효율성은 상대를 제압하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현대 종합 격투 스포츠에서 빼어난 승률을 기록하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흔히 종합격투기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프라이드를 보며 '타격이 무슨 소용 있느냐? 수없이 두들겨 맞다가도 암바 한번이면 끝나는 것 아니냐?'며, 그래서 프라이드가 재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전이라는 가정하에서 수없이 날리는 의미없는 펀치보다 단 한번의 관절기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후자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격투팬들은 알게 모르게 '한 방'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동경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단 한방의 펀치와 일격의 하이킥을 훨씬 높이 쳐주는 경향은 타격기가 훨씬 시각적인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조용히 '부드럽게' 상대를 휘감아 제압하는 유술은 상대적으로 시각적인 자극은 떨어진다. 관전 스포츠인 현대의 격투기에서 시각적인 효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술가에게는 바로 '암 바'가 그 '한 방'이라는 반론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유술의 쇠락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바로 주요 단체들의 '새로운 룰'에서 기인되었다. 일례로 프라이드의 경우 주최측의 '화끈하고 재미있는 격투 만들기'라는 대의가 상대적으로 유술가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분석이다. 라이벌 이벤트인 K-1에 비해 속도감이 떨어지고 다소 지루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프라이드는 바닥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새로운 룰이 적용되면서 유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조치가 종합 격투라는 당초의 취지와는 대치되는 부분도 있다는 이견이 있다. 유술가에게는 누워서 상대를 기다리는 것이 '공격 예비 동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운터 펀치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가 기회를 엿보며 백 스텝을 밟으며 기다리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파울을 주지는 않지 않는가? 일방적으로 한 선수가 그라운드로 내려가기를 원하지 않는 다고 해서 그래플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불합리한 부분도 분명 있다. 룰을 피해 일어나려고 하면 사커 킥이 날아드는 실제 경기를 생각해 보면 그래플러는 상대와 심판에 양측에서 압박을 받는 것이나 다름 없다. 좀 더 균형 잡힌 경기 진행을 위해서는 공격을 하지 않은 두 선수에게 모두 경고를 주는 등의 세밀한 보완책이 아쉬운 부분이다.
유술은 실전에서의 놀라운 적응능력 때문에 종합 격투기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위기에 봉착하게 된 유술계 선수들에게는 신기술 개발만이 시련을 돌파하게 해줄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능유제강(能柔制强;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의 정신이야 말로 엘리오 그레이시 때무터 내려온 유술의 정수가 아닌가? 지금이야 말로 유술의 '유'(柔)의 정신을 되새길 시점이다.
아울러,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겼던 수많은 타격가들도 남몰래 집중적인 유술 훈련을 받으며 연구하고 또 연구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스포츠 주짓수를 중심으로 유술의 옛 영광으로 재현할 만한 재목들이 많이 있다는 것. 이미 '문디알의 수퍼스타' 파브리지오 베흐둠이 프라이드 링위에서 근래 보기드문 깔끔한 유술기술로 두차례 승리를 따냔 바 있고 크로캅이라는 또 다른 수퍼스타와의 결합으로 프라이드 정복을 꿈꾸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전 세계 종합 격투계를 호령했던 그레이시 가문도 제 4세대 '네오 그레이시(Neo Gracie)'들이 빅리그 입성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레이스 주짓수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복싱 든 기초적인 스킬 조차 외면 했던 기존의 그레이시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타류 무술과의 크로스 트레이닝에도 힘쓰는 등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량급이기는 하지만 크로슬리 그레이시가 판크라스와 부시도를 통해 사쿠라이 마하 하야토를 제압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그레이시 중 가장 큰 체구를 자랑한다는 호저 그레이시도 문디알과 아부다비를 석권하는 등 스포츠 주짓수의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호저 같은 경우는 해외 팬들이 프라이드 입성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해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이들을 통해 유술의 제2의 전성시대가 오지 않을까? 유술의 놀라운 적응력을 생각해보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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