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풍차의 나라, 한반도 5분의 1정도의 면적에 인구 1500만의 단아한 서유럽의 입헌군주제 국가 네덜란드의 이야기다. 튤립과 풍차 외에도 잘 발달된 낙농업과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일궈낸 저력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이미지이다.

우리나라에게도 네덜란드는 각별한 나라이다. 바로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 히딩크의 나라이기 때문. 2002년 당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네덜란드국민들이 대신 우리나라를 응원했던 일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이다.

사실 네덜란드의 축구 열기는 영국이나 스페인 독일 등 유명 리그를 가진 나라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시장 경제 측면에서 거대리그를 운용하기 어려울 뿐, 크루이프와 반바스텐, 베르캄프, 반니스텔루이 등 걸출한 축구선수들로 유명한 '축구의 나라'이기도 하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축구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영광의 리그'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1부리그 '에레디비지에(Eredivisie)'의 인기는 유럽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고른 기본기를 갖춘 폭넓은 선수층 또한 유명한데, 생활체육으로 '풀뿌리 축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있는 데서 그런 저력이 나온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우리 같은 격투기 매니아 들에게는 위에 언급했던 풍차와 튤립, 그리고 축구 외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바로 '스트라이크(strike; 타격)'의 나라... 미국과 일본 등 대형 종합격투 이벤트를 통해 수많은 명 파이터를 배출한 격투강국의 이미지가 바로 그 것이다. 주짓떼의 나라 브라질과 삼보의 러시아와 함께  킥복싱의 네덜란드는 격투기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격투 상임이사국'으로 불릴 정도 이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K-1 2005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또 한명의 네덜란드 챔피언이 배출되었다. 우리나라의 최홍만과 함께 거인 파이터 시대를 이끌고 있는 세미 슐츠. 슈측 13번째 K-1 챔피언 왕좌에 오르면서 네덜란드가 격투 강국임을 또 한번 증명했다.

사실 슐츠를 비롯하여 역대 K-1 WGP 챔피언 자리는 네덜란드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피터 아츠가 세 차례, 호스트가 네 차례 레미 본야스키가 두 차례 그리고 이번에 슐츠까지 총 열 세번의 WGP 파이널에서 총 9번을 네덜란드가 차지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방적이다. 초대 챔피언 브랑코 시가틱이 크로아티아 출신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네덜란드에서 격투인생을 보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앤디 훅과 마크 헌트를 제외하고는 네덜란드가 독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1500만의 작은 유럽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UFC 헤비급 챔피언과 판크라스 챔피언을 지냈던 네덜란드 출신의 명 파이터 바스 루텐은 '네덜란드 격투가 강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네덜란드)에게는 축구와 킥복싱은 같다'

생활체육으로서 그 뿌리 깊기로 유명한 네달란드 축구와 킥복싱을 비교할 수 있을까? 킥복싱하면 허름한 상가건물 3층의 땀냄새 지독한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우리네 상식으로는 선뜻 와닫지 않는 설명이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격투강국에 걸맞는 명문 격투 도장이 수두룩하다. 본야스키를 배출한 메지로 짐과 호스트의 보스짐. 세미 슐츠를 배출한 골든 글로리와 챠크리키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문 격투 도장이 여럿 있다. 격투 강국인 브라질과 러시아 조차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명문팀은 두 곳 정도 씩밖에 없는 것을 감안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가 드러난다.

입식타격 최강의 명성을 낳은 명문 도장 중 MMA 전문팀 골든 글로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쪽에 끈이 닿아 있다. 메지로 짐의 '메지로'는 도쿄 시내의 거리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 킥복싱의 창시자로 알려진 구로사키 겐지가 태국에서  룸피니 파이터에게 고배를 마신 뒤 킥복싱을 표방한 체육관을 도쿄 메지로 가 근처에 열었고, 이 체육관에 얀 플러스와 요한 보스라는 네덜란드인 수련자들이 찾아왔었던 것이 그 연(聯)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고국 네덜란드 돌아가 세운 체육관이 메지로 짐과 보스 짐으로 현재가지 네덜란드 킥복싱의 양대 산맥이 된 것이다.

일본을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유럽에 극진 가라데를 보급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잠시 머물렀던 최배달 관장을 사사했던 톰 해링스가 만든 도장으로서 챠크리키는 차력(借力)의 일본식 발음에서 따온것이다. 앞서 두 체육관을 있게한 구로사와 켄지가 원래 최배달의 제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입식타격 강국 네덜란드의 씨앗은 극진이 뿌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도 있다.

앞서 소개한 바스 루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에서는 축구나 다름없다는 생활체육 '킥복싱'의 저변 확산에는 수많은 명 파이터를 배출한 명문 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식에서도 기인한다. 현대 실전 격투 스포츠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 바로 극진 가라데인데, 네덜란드는 가라데의 나라 일본과 또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근대일본의 개항의 시작을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M.C.페리 제독이 미국 대통령의 개국(開國) 요구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왔을 때부터로 보는데, 네덜란드는 1609년에 이미 상관(商館)을 열고 정식 교역을 시작했던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일본 사람들은 서양의 신문물과 신기술을 서양의 학문이라는 뜻의 '양학(洋學)' 대신에 '란학(蘭學)'이라고 불렀었다. 여기서 '란'은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화란(和蘭)'. 당시 화란상관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도쿄 디즈니랜드와 함께 일본 최고의 테마파크로 잘 알려진 '하우스 텐 보스'가 버티고 있다. 하우스 텐 보스는 네덜란드 여왕의 궁전과 시청, 성당 등 한 도시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테마파크이다. 구구절절히 팔자에도 없는 세계사를 읊은 것은 일본과 네덜란드의 오랜기간 이어온 특수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다.

이만큼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일본의 문물에 대해 거부감이 적었던 것. 가라데와 킥복싱이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20년이나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문화적 거부감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덜란드가 킥복싱 강국이 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좋은 신체조건을 타고났다는 것. 네덜란드인의 평균신장은 남성 185cm로 이는 같은 서양인인 영국과 미국에 비해서도 5cm이상 큰 수치라니 상식 밖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주식으로 영양가 높은 유제품을 주로 섭취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균형잡힌 몸매에 강인한 골격, 군살없는 체형에다가 긴 다리는 킥복싱에 최적의 신체조건인 두말 할 나위 없다.

얼마전 세미 슐츠의 트레이너가 최홍만에게 네덜란드로 오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럴 경우 언어나 문화 문제 등은 일본에 비해 어렵겠지만 격투 훈련에는 최적의 조건일 것이다. 2m가 즐비한 스파링 파트너가 즐비하다는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세미 슐츠와 같은 거인 파이터를 길러낸 시스템은 최홍만에게 새로운 신천지를 열어 줄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격투가 아닌 다른 스포츠 에서도 2m가 넘는 거인 선수들의 훈련 방법은 일반 선수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네덜란드의 격투 양성 시스템은 세미 슐츠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역량을 가졌음을 이미 증명했다.

동양 무술과 격투 스포츠에 대한 인식에다가 건설적인 경쟁을 통한 명문 도장의 발달 거기다가 좋은 신체조건에다가 훌륭한 격투 훈련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 어떤나라가 격투 강국이 될 수 없겠는가? 이것이 바로 인구 1500만의 작은 나라에서 K-1 챔피언을 13번 중 11번을 배출한 저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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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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