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6일 프라이드의 올시즌 개막전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드31 '드리머'(PRIDE31 'Dreamer')가 열렸다. 그동안 잠재력은 있었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던 선수들과 노장의 마지막 투혼을 펼치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올해 벽두부터 MMA계를 달구어놓았던 무차별 그랑프리의 전초전 성격의 매치들로 채워져 지난 남제 2005 이후 긴 비시즌을 기다려왔던 프라이드 팬들을 찾아왔다.
'또 하나의 러시안훅' 로만 젠소프가 왼손 펀치 한방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역시 우리나라 팬들의 기다림의 종착역은 뒤이어 펼쳐진 윤동식과 퀸튼 잭슨의 미들급 매치였다. 경기결과 부터 이야기 하면 3:0 심판전원일치 판정패, 프라이드 3패째를 기록했지만 그 내용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졌다. 말 그대로 일취월장!
이번 윤동식의 상대가 퀸튼 '람페이지' 잭슨으로 결정되자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비난과 조소가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퀸튼이 최근 실바와의 타이틀 매치에서 패배하고 쇼군에게 마져 패배하자 프라이드 측이 퀸튼을 홀대한다는분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MMA 경력으로만 보면 퀸튼이 전적과 실력에서 월등히 앞선던것도 부정할 수없는 사실이었다.
퀸튼 잭슨이 누구인가? 히카르도 아로나와 이고르 보브찬친 그리고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척 리델도 제압했던 명실상부한 세계 탑클래스의 파이터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 챔피언 반달레이 실바를 가장 궁지로 몰아넣었던 미들급 파이터도 다름아닌 퀸튼 잭슨이었다.
걱정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의 윤동식은 오히려 여유있는 표정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테이크 다운으로 경기를 시작한 윤동식은 니 킥으로 응수하는 퀸튼을 상대로 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라운드에서 하프가드로 퀸튼을 꽁꽁 묶어 놓으며 무시무시한 공격을 피해나갔다.
1라운드 중반 퀸튼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내준 윤동식은 첫번째 위기를 맞았다. 윤동식이 클로즈드 가드에서 암바를 시도하자 퀸튼이 특유의 엄청난 괴력으로 윤동식을 들어올려 바디 슬램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려 한것. 끈끈한 그래플링의 대명사 히카르도 하로나를 무참히 실신시켰던 바로 그 장면 이었다.
윤동식은 순간적인 기지였는지 미리 대비를 해온것인지 모르지만 들어올려지는 순간 퀸튼의 다리를 잡으며 무시무시한 바디슬램을 두 차례나 막아냈다. 그립이 풀리며 마침내 공중에 들어올려졌을 때는 또 한번 잡고 있던 팔을 놓으며 슬램의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다. 유도가 특유의 균형감각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곧이어 탑 포지션을 내준 윤동식은 퀸튼의 니킥과 스탬핑에 두번째 위기를 맞았지나 하프가드로 위기를 모면했다. 오히려 퀸튼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툭툭 던지는 파운딩만으로 윤동식을 압박했으나 비교적 파운딩 대비를 잘 준비해온 윤동식이 방어를 잘 해 냈다. 1라운드를 마치고 나서도 비교적 깨끗한 얼굴을 보여줘 퀸튼의 일방적인 초반 승리를 접쳤던 관계자들이 되례 놀라는 상황이 펼쳐졌다.
2라운드에서도 힘 하면 한 힘하는 퀸튼을 상대로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유도의 발목후리기 기술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는 등 좋은 모습도 보여주었다. 퀸튼의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포착되기도 했다. 윤동식의 니킥이 로우블로로 판정되며 잠시 휴식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퀸튼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를일이었다.
휴식 후 퀸튼의 타격이 되살아 났고 원투 펀치에 이어진 니킥에 윤동식이 충격을 받아 또 한번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리버스 백마운트까지 내주며 니킥 연타에 빰클린치에서 니킥과 어퍼컷을 차례로 혀용하며 그로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윤동식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클린치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2라운드에 많은 포인트를 잃었다.
전체적으로 포인트를 많이 잃은 윤동식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라운드 3분경, 두 선수 모두 다급해진 상황에서 퀸튼의 원투 펀치가 또다시 날아들었고, 윤동식은 태클로 응수했다. 클린치 싸움에서도 오히려 윤동식이 퀸튼을 포프끝으로 몰아붙였고 이윽고 코너에서 멋진 투 렉 테이크 다운에 이어 풀 마운트를 빼앗아내기도 했다. 누운상태에서도 힘으로 스윕을 하는 퀸튼이 아니었다면 곧바로 승리를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테이크다운이었다. 여지없이 퀸튼이 힘으로 스윕을 성공시키며 윤동식의 천금같은 기회를 무산시켰지만,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었다.
이제 프라이드 3전째인 초보를 상대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퀸튼은 옆구리에서 안면으로 이어지는 파운딩을 좌우로 날리며 가드패스를 성공했고, 사이드 마운트에서 니킥을 적중시키며 3라운드를 마무리했다. 결과는 타격에서 월등히 앞선 퀸튼 잭슨의 판정승. 퀸튼의 공격성이 당연히 높은 점수로 이어졌다.
이제 프라이드 3전째인 윤동식은 미들급 최고수준의 공격력을 보유한 퀸튼을 묶어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역전 KO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필살기술이 없어 끝내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가드포지션에서 퀸튼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승리를 결정지을만한 피니쉬 블로우(마무리 기술)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유도로 치면 꼭 '절반'의 상황이었다.
이번 퀸튼 잭슨전에서 윤동식이 나름대로 찾을 수 있는 의의는 방어는 합격점이었다는 것. MMA 적응의 첫 단계를 공격만큼은 최정상급인 퀸튼 잭슨을 상대로 잘 막아내면서 반쪽뿐이기는 하지만 수준급 방어를 보여줬다. 문제는 역시 공격력. 프라이드 무대에서는 패배하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관중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수비 일병도의 스타일로는 당연히 경기에도 승리할 수 없을 뿐더러 관중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없다. 남은 관건은 역시 공격력. 자신의 특기인 '악마의 굳히기'라는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관절기 마무리 기술은 물론, MMA 필수 이수과목인 타격 과목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 덧붙여 윤동식의 펀치 스피드가 너무 느리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는데, 핸드 스피드느 사실 어느정도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효도르 형제를 보라) 다행스러운 건 펀치 공격은 스피드만으로 유효 타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 파워도 있지만 윤동식에게는 타이밍을 추천하고 싶다. 척 리델의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오른손 펀치를 참고해보면 어떨까? 확실히 리델의 펀치는 결코 빠르다고 볼 수 없다. 어떨 때 보면 '저게 과연 맞을까' 싶기도 한 정도의 펀치로도 KO를 이끌어낸다. 그 비밀을 캐내고 자신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윤동식에게 남은 숙제이다.
프라이드31 드리머에서 일취월장한 모습을 선보인 윤동식... 과연 그가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윤동식을 잘 아는 주변사람들이 하나같이 '윤동식이 도전한 이상 뭐라도 이뤄 낼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내내 머리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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