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名品 Kick' 열전!

 | K-1
2007/08/16 23:17

격투 스포츠의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소위 '한 방'이 터져 나오는 순간일 것이다. 파워와 스피드 그리고 타이밍이 만들어 내는 한편의 예술작품인 '녹 다운(Knock-down)'을 보기 위해 우리는 격투 스포츠에 열광한다. 더군다나 '하이킥'에서 나오는 녹다운이라면 그 열광은 배가 된다. 펀치를 비롯한 수 많은 기술들 중에 유독 하이킥에 각별한 것은 시각적으로도 화려하며, 동시에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1에서 하이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 자체가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것은 분명 아니다. 고정된 표적판이 아니고서야 끊임 없이 움직이는 상대를 킥으로 적중 시켜 녹다운 까지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사실 미스터리 이다. 훈련 받은 전문 파이터의 뛰어난 동체시력과 신체반응속도를 감안해 보면 도저히 물리적인 속도가 늦은 킥 기술로 맞춰 낸 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킥을 구사하는 순간 차는 쪽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무술의 오래된 격언 '십각구위(十脚九危)'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차기 열번이면, 아홉은 위험에 처한다'. 이는 현대 격투 스포츠에도 그대로 통한다. 펀치에 3배에서 6배에 다다른 다는 킥의 생체학적 인 위력은 달콤할지 몰라도 역습에 대한 위험도 그만큼 증가한다. 간결하고 민첩하며 다양한 궤적을 그려낼 수 있는 펀치에 비해 킥 기술은 느리고 둔하며 단조롭다. 그만큼 구사하는 데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요한다.

 

화려함과 희소성... 게다가 명품들이 갖추고 있는 품격과 높은 품질 또한 킥 기술과 그 의미가 맞는다. 어떤 파이터라도 두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킥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며, 반복적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파이터는 그 중에서도 극소수다. 화려한 외형을 갖추었고, 기술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다. 명품이 갖추어야 하는 요건들을 전부 갖춘 셈이다.

 

'K-1은 로우킥으로 시작된다'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K-1에서의 로우킥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의 로우킥을 기본적으로 구사한다고 봐도 좋다. 입식격투 교본이 있다면 '킥 편' 1장에 나올 법 한 보편적인 기술이지만, 명품 로우킥은 그런만큼 더욱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로우킥의 제1목적은 견제와 교란…… 거리를 제압하는 자가 천하를 제압한다는 최배달 선생의 말과 같이 거리를 지배하기 위한 가장 큰 무기가 바로 로우킥이다. 상대가 들어오려는 타이밍에 구사함으로서 자신이 유리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미스터 퍼펙트 호스트의 로우킥을 최고의 명품킥으로 꼽는데, 철저히 거리를 제압하는 스타일이었던 호스트의 로우킥으로 시작해 로우킥으로 끝나는 콤비네이션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명품 기술이다.

 

단순한 거리유지와 견제 이외에도, 시선 분산을 통해 더 많은 공격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한다. 발끝에서 스텝에 얹어서 나오기 때문에 원래 시선이 미치기 힘든 데다, 큰 글러브로 가드까지 바짝 올려야 하다 보니 아예 가려서 안 보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미쳐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한번 내주면 온 신경은 통증이 올라오는 다리쪽에 분산된다. 비슷한 움직임만 나와도 백스텝을 밟거나, 정강이 블록킹을 위해 스텝을 멈출수 밖에 없다. 펀치에 대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허점이 나온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가드에 틈이라도 만들라 치면 더 많은 펀치의 기회를 내줄 수 밖에 없다. 참 간단한 이치인데 늘 통하는 것 보면 효율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기본 중에 기본으로 보편화 된 로우킥에 비해 미들킥은 좀처럼 잘 쓰는 파이터를 만나기 쉽지 않다. 안면 가드에서 팔을 내려 손쉽게 가드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에서 크게 떨어 지기 때문. 더군다나 K-1 공식 룰에 의해 킥을 잡아 낼 경우 한 차례 펀치를 허용하고 있는데, 옆구리를 향해 들어오는 미들킥은 잡아내기가 비교적 쉽다. 단 한차례의 정타로도 게임이 끝날 수 있기 때문에 파이터들 대부분 미들킥 사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로우킥이 '데미지 잡아먹는 좀도둑' 정도 된다면, 미들킥은 '협잡꾼 사기꾼에 소매치기' 정도로 사용된다. 로우킥과  섞어서 쓰며 로우킥으로 오인하게 하여 큰 데미지를 빼앗거나, 하이킥을 성공시키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크로캅이 이런 전략을 잘 사용했는데, 로우킥과 미들킥 그리고 하이킥의 예비 동작이 거의 유사해 많은 파이터들이 가드를 내리다가 헤드킥에 그대로 당하곤 했다.

 

물론 미들킥이라 해서 협잡꾼스러운 기술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MAX 최강의 킥 아티스트 쁘아까오 포 푸라묵 같은 경우는 정직하다 못해 우직하게 미들킥을 사용한다. 양 훅을 날리는 것만큼 편안하게 양 발 미들킥을 날리는 쁘아까오는 미들킥은 트릭이나 페이크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빠르고 강하며 정확하게 차는 것 외에는 아무런 테크닉도 없다. 상대가 막아내든 말든 상관 없다는 식으로 가드 위에서 강하게 꽂아 넣을 때 보면, 빠르고 강한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펀치의 다양함까지 보강되며 한층 더 날카로워진 쁘아까오의 미들킥은, 그 단순한 킥 기술을 명품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미들킥도 정확하게 적중시킬 경우 언제든지 상대를 주저 않게 할 수 있지만, 시각적인 임팩트는 사실 하이킥을 따라 갈 수 없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실제 경기에서 쉴새 없이 스텝을 밟으면서 위빙 동작을 반복하는 상대를 하이킥으로 조준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하이킥을 구사할 때 필연적으로 균형을 잃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곧 역습을 의미한다. 사정거리는 킥이 길지 모르지만, 거리를 좁혀 그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간다면 균형까지 무너진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펀치에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 하이킥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킥 아티스트들에게도 타이밍을 잡아내는 순간이 한 경기에 단 한차례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니, 하이킥으로 녹 다운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세기 최강의 킥복서'로 군림했던 피터 아츠의 하이킥은 현재까지도 녹 다운 하이킥의 대명사로 가장 많이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전성기때의 피터아츠의 스타일은 거의 대부분의 경기로 하이킥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아츠는 사실 하이킥을 자유 자재로 구사할 만큼 유연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하이킥 녹다운 하이킥을 만들어 낸 것은 타이밍을 포착하는 데 천부적이었기 때문. 특히 클린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피터 아츠는 거의 본능적으로 타이밍을 잡아 하이킥을 적중 시키고는 했다.

 

아츠가 기회포착형이었다면 크로캅은 변화주도형쯤 될까? 크로캅의 킥은 몸 뒤에서 시작되어 궤도를 그리기 시작되는데, 몸 앞으로 거의 평행을 유지하며 호를 그리며 나오다가 그때서야 로우-미들-하이의 방향이 결정된다. 일단 방향을 하이로 잡았다면 크로캅의 하이킥의 독특한 행보는 거기서 시작된다. 몸 앞까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회전하며 나오다가 불연 듯 상대의 관자놀이 쪽을 향해 최단거리로 직선으로 올라간다. 회전력을 그대로 머금은 채 최단거리로 올라오는 킥은 스피드에 우위가 있다. 직선 궤도로 올라오면서 다소 떨어진 파괴력을 크로캅은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여 보충한다. 마치 상대의 관자놀이를 아래서부터 위로 비스듬히 깎아 올려가면서 체중을 실어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작렬할 수 있는 것이다.

 

극진의 에이스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브라질리언 킥도 독특하다. 브라질리언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크로캅의 킥과는 반대로 몸 앞까지는 직선으로 올라와서는 무릎이 펴지며 뻗어나오는 순간에 회전을 시작한다. 상대 입장에서는 반 박자 정도 속도의 변화도 일어나는 동시에 마치 위에서 킥이 떨어져 내려오기 때문에 방어가 쉽지 않다. 세 선수 모두 하이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의 K-1에서는 리스크가 큰 하이킥보다는 니 킥이 각광 받는 추세이다. 특히 쉴트를 시작으로 최홍만과 비욘 브레기 등 이른 바 '하이타워' 파이터들이 등장하면서 안면까지 그대로 공략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주목을 끌고 있다. 목 잡기가 금지되면서 위력이 반감 되는 듯 했으나, 오히려 독자적인 타격기술로 발전되며 주가가 급상승 되었다.

 

니킥에도 명품 니킥은 단연 레미 본야스키의 '플라잉 니킥'. 긴 다리와 특유의 탄력을 바탕으로 2003-4년 챔피언 본야스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솟구쳐 뛰어 날라오며 니 킥을 날려 적중시키는 본야스키의 플라잉 니킥은 시각적으로 가장 즐거운 빼놓을 수 없는 '명품 킥'이다.

 

격투 팬들의 심장을 울리고 뇌리에 박혀 두고두고 돌이켜 봐도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명품 킥'들에 대해 두서없이 나열해 보니 슬그머니 우문(愚問) 하나가 생긴다. '과연 누가 가장 '강한' 킥 아티스트인가?

앞서 언급한 호스트와 쁘아까오, 아츠와 크로캅 등으로 범위를 축소해 봐도 어떤 한 선수의 킥만 선정하기란 쉽지 않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빼어난 명품 킥 아티스트들 이라 하더라도, 킥 기술 하나 만으로 정상급 수준에 오를 수 없다는 것. 명품 킥이라면 반드시 민첩하고 다양한 스텝과 풋워크는 기본, 펀치 컴비네이션 등 다른 기술과 함께 구사할 때 빛을 발한다는 단순한 진리로 귀결된다.

 

그래도 꼭 하나만 꼽으라면 크로캅 쪽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혀 차원이 다른 온 글러브 입식타격과 종합격투 두 분야에서 모두 하이킥을 주무기로 넉 아웃 KO를 보여 준 것 만으로도 진정한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한 것이 아닐까?


'
하드 펀쳐' 들과 '빅 타워'들의 전성시대인 최근의 K-1을 보며 수려하고 아름다운 명품킥이 점차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격투팬들도 많은 것 같다. 오는 9월 열리는 서울 개막전에는 명품 킥의 계보를 이어갈 킥 아티스트의 화려한 등장을 예상해 보는 것도 K-1을 읽어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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